역대 과학 전람회 중 미디어를 통하여 가장 널리 보급된 전람회는 1960년 미국의 과학 전람회일 겁니다.
옥토버스카이(원본 책이 로켓 보이였을 겁니다. 옥토버스카이로도 지금은 발행하는 것 같지만)의 주인공 호머 히컴(현 나사 자문관)의 이야기이죠.
이전 글들에서 최초의 국제 박람회가 열린것이 1851년 대영박람회(런던 국제 박람회, The Great Exhibition)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그 전신인 산업박람회는 18세기 말부터 시작되죠.
과학 전람회의 경우도 박람회보다 야간 늦은 시기에 시작됩니다.
과학 전람회의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며,
그 시작 년도는 1828년입니다. [1]
그 명칭은 American Institute Fair로1897년 까지 매년 Niblo’s Garden과 Masonic Hall이라는 전시관(극장)에서 열리게 됩니다. [2, 3]
네 미국의 산업박람회 이야기를 하며 등장했었죠.
즉 미국의 산업박람회는 전람회의 기능을 같이하며 진행되었습니다.
대영박람회 글에서도 알 수 있듯 각 분야별 우승자를 가려냈으니 당연한 일이죠.
결국 이때의 과학 전람회는 학생 대상의 행사라기 보다는 성인대상의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지금도 과학전람회의 성인 참여(교사)는 가능합니다. 제가 전람회에 참여했을 때 교장선생님 팀으로 참여한 팀이 있었죠.)
이런 박람회의 발달은 학회의 발달과 같이 가게 됩니다.
학술대회의 발달 [4]
우리가 흔히 연구할 때 참조문헌으로 많이 쓰는 저널은 17세기 부터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석학들의 모임인 학회는 이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발달됩니다.
최초의 근대적 학회는 1815년 Union of International Associations가 주도하여 시작됩니다.
그리고 1900년 본격적으로 학회들이 다른 교육 매체들과 함께 급격히 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발표회들을 본따 교육에 적용한 것이 과학 전람회가 되죠.
재미있는 사실은 과학 전람회는 1940년에 시작하지만, 이와 유사한 학회의 포스터 세션의 시작은 1970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 8회 국제 생화학 회의(8th International Congress of Biochemistry)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8회 국제 생화학 회의의 계최를 알리는 글[5]
학생 교육이 성인 교육에 적용되었다 봐도 무방하지 않을 정도죠.
성인 교육과 학생 교육의 상호작용은 이미 예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음 글부터 최초의 과학 전람회의 그 주역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Society for Science & the Public(SSP, Science service)과 과학전람회
과학 전람회의 역사는 1921년 만들어진 Society for Science & the Public(이하 SSP)에서 시작됩니다. SSP는 두인물이 만들게 되는데 저널리스트인 에드워드 스크립스(Edward W. Scripps)와 동물학자인 윌리엄 이머전 리터(William Emerson Ritter)가 이 단체를 설립합니다.
SSP는 Science news lettere라는 과학 잡지를 발간하는 데서 시작을 하는데요, 잡지는 순조롭게 발간되고 SSP는 새로운 영역에 손을 대게 됩니다.
바로 최초의 과학기술전람회인 Science Talent Search(STS)의 개최입니다.
1942년 개최된 Science Talet Search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지원을 받아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계최하고 있습니다.
1942 Science Talent Search
그리고 1950년 기존의 지역 과학전람회의 우승자들을 모아 전국 과학 전람회(national sciece fair)를 엽니다.
1950년 National science fair
그리고 1958년 캐나다, 일본, 독일이 참가한 첫 국제 과학 전람회가 열리고 이것이 현재의 Intel 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 (Intel ISEF)로 성장하게 됩니다. [6]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1950년 '기존의' 지역 과학전람회의 우승자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전국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지역 과학 전람회가 개최되고 있었다는 것이죠.
미국의 지역과학 전람회
이 하이퍼링크에서 세계의 전람회 홈페이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미국의 지역 과학 전람회를 확인 할 수 있죠.
2016년 제가 조사할 당시 미국의 지역전람회의 수는 241개였습니다.[7]
여기서 두군데만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뉴욕시의 과학전람회의 역사입니다.
1828세기에 뉴욕에 산업 학회가 설립된 것은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보다 11년 빠른 1817년 정치인인 사무엘 미첼(Samuel L. Mitchell)의 주선으로 물리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의 모임이 주선되고 이때부터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8]
그리고 한참이 지난 1948년 Science and Technology Exposition in New York City라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한 과학 전람회가 열리게 됩니다. [8]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STEM)교육이 만들어지게 되죠.
우리나라는 여기에 Art를 추가하여 STEAM 교육을 합니다.
두번째는 로스앤젤레스의 Los Angeles County Science & Engineering Fair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대회는 그시작의 주체가 열댓명의 과학선생님들의 모임이었다는 것이죠. 1950년 최초로 시작되어 그해 150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고 개최는 오래된 공장 건물에서 진행됩니다. 이것이 발달되어 캘리포니아 과학관에서 과학 전람회가 열리게 됩니다. [9]
미국 과학전람회의 흥미로운 점은 국가가 주체가 아닌 사립 기관들이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죠. 어쩌면, 미국의 교육문화를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재밌는건 이런 사립 대회들이 권위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국가기관에서 주는 상이 대학입학에 관여하는 것처럼 이런 사립 기관에서 준 상이 대학입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호머 히컴도 그 사례 중 하나이고요.(전람회 우승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죠.)
국가가 주체인 교육과 사립기관이 주체인 교육 장단점이 있겠지만, 사립기관이 권위와 공정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은 좀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럼 마지막이 될 다음 글에서는 한국의 과학전람회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과학전람회
한국의 과학 전람회는 의외로 빠르게 시작합니다.
해방 직후 1946년 부터 바로 조선과학동우회, 이어 문교부가 주최를 주관합니다.
조선과학동우회는 1946년 부터 우리과학전람회를 진행하고, 이후 국가가 맡아 이를 관리하게 됩니다. [14]
1948년 문교부는 교육·과학·기술·예술·체육·기타 문화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만들어지고,
이 문교부에서 우리과학전람회를 이어받아 1949년 부터 경복궁(!)에서 전국과학전람회를 진행하게 됩니다. [15]
이미 일제시대부터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발명가들 과학자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고자 협회들이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6.25가 발발하고 과학 교육을 위한 시설 대부분이 파괴됩니다.
국립과학관(현 국립서울과학관)은 한국전쟁으로 건물과 시설이 완전히 소실된 후 1960년부터 공사가 추진되어 1962년에 다시 개관한 후 1964년부터 전국과학전람회를 주관하게 됩니다.[14, 15]
이후 1990년 국립중앙과학관이 설립되며, 업무주관이 국립중앙과학관으로 옮겨가게 되죠.
국립중앙과학관 개장 당시 사진 [18]
그리고 각 지역 주관 홈페이지에서 지역과학전람회 출품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죠.
다만 검색이 안되는 지역들도 많습니다.
이건 좀 아쉽죠. 국가에서 지원하는 만큼 해당 작품들을 잘 공유하면, 과학 교육에 있어서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물론 대회의 자료를 전체 공개하는 일이 쉬운것은 아닙니다.
내용을 전반적으로 확인하면, 조선과학동우회가 주관할 때를 제외하고는 과학전람회는 과학관이 주관을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북같이 종합 과학관이 없는 지역은(...) 과학교육원이 주관을 하지만요.
그 와중에 좋은 성적을 내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과학관들이 교육기능이 부실합니다.
과학교육에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주체인 과학관에 대한 지원이 적은 건 아쉬울 따름이죠.
과학관이 전반적인 과학교육의 중심이라기 보단, 어린이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고요.
과학을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기 보단,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시설정도의 느낌이 강하죠.
물른 국립중앙과학관은 시설이 훌륭한 편이지만, 어지간한 다른 과학관들은 가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학관얘기는 여기까지하고 다시 과학전람회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대회를 하다보면 별의별 상황을 다 겪게 되고, 과학전람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충격과 공포였던건, 고등학교 과학 전람회에서 심사위원이 출품된 작품을 보고 "이게 물리인가?"하고 질문했던 거였죠.
해당 발표의 주제는 생선들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생선집단의 움직임 현상에 대한 발표였습니다.
제 선배님들의 주제였죠.
선생님 중 한분이 통계물리에 관심이 있으셨거든요. 그 선생님의 지도로 만들어진 주제였습니다.
심사위원의 예의가 아니죠, 지식도 부족한 거구요.
아마 과학전람회의 특성상, 물리교육과 교수님이 심사를 맡았을테지만요.
이것만 보더라도 과학교육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걸로 더 길게 글을 끌 수 없으니 과학 전람회에 대해선 역시서 마치겠습니다.
해당 이야기는 번외로 만들어 아예 다른 이야기로 진행하겠습니다.
레퍼런스
[1] Bellipanni, Lawrence J. "The Science Fair Experience: Profile of Science Fair Winners." (1994). https://files.eric.ed.gov/fulltext/ED395793.pdf
[2] NEW-YORK HISTROICAL SOCIETY MUSEUM&LIBRARY, Guide to the Records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the City of New York for the Encouragement of Science and Invention 1808-1983(Bulk 1828-1940) MS 17. Historical Note, 07 Aug. 2014. Web. 26. Apr. 2016
[3] Frederic William wile, “A Century of industrial progress”, New York : Doubleday, Doran(1928)
[4] Schmidmaier, Dieter. "Poster Sessions as a New Viewpoint of Scientific Communication-General Problems and Library Aspects." (1981). https://docs.lib.purdue.edu/cgi/viewcontent.cgi?article=1230&context=iatul
[5] Renold, AlbertE, and FrancisJ Griffin. "8th International Congress of Biochemistry." FEBS Letters 5.2 (1969): 171-172. https://febs.onlinelibrary.wiley.com/doi/pdf/10.1016/0014-5793(69)80323-6
[6] SOCIETY FOR SCIENCE & THE PUBLIC, Mission and History., 27. Apr. 2016, https://www.societyforscience.org/regeneron-sts/
[7] The WWW Virtual Library:Science Fairs, 27. Apr. 2016, http://physics.usc.edu/ScienceFairs/
[8] https://www.nyas.org/history-highlights/
[9] https://www.lascifair.org/a-little-history/
[10] SOCIETY FOR SCIENCE & THE PUBLIC, Mission and History., 27. Apr. 2016, https://www.societyforscience.org/regeneron-sts/
[11] The WWW Virtual Library:Science Fairs, 27. Apr. 2016, http://physics.usc.edu/ScienceFairs/
[12] https://www.nyas.org/history-highlights/
[13] https://www.lascifair.org/a-little-history/
[14] 송성수, “한국 과학기술문화활동의 진화와 과제“, 2003, 과학기술정책연구원
[15]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4533&pageFlag=&sitePage=1-2-1
[16]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9258
[17] 조동인, 한국 초기 아마추어무선의 역사, 2부, 2021. 1. 16. http://www.thechofamily.com/Korea%20Early%20History%20Part-2.html
[18] 안재승,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새 관광명소 각광, 한겨례, 769호, 1990. 11. 8.
[19] 최수목, 바퀴벌레 한번 짝짓기로 거푸 수정 밝혀내, 동아일보, 21263호, 1990, 10, 9.